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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Movie Review

가장 따뜻한 색, 블루 (2013) La vie d'Adele Blue Is the Warmest Color 영화 리뷰

영화 리뷰: 가장 따뜻한 색, 블루 (2013) La vie d'Adele Blue Is the Warmest Color ★★★★★ 


15살 소녀 ‘아델’, 파란 머리의 신비로운 소녀 ‘엠마’를 만나다!
미지의 사랑을 꿈꾸는 ‘아델’, 현실의 사랑을 이끄는 ‘엠마’ 


여느 소녀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고등학생 ‘아델’(아델 엑사르코풀로스 분)은 빈칸들로 점철된 미래의 답을 찾고 있는 문학소녀이다. 피에르 드 마리보의 소설 <마리안의 일생>을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아델’ 앞에 어느 날 파란 머리의 대학생 ‘엠마’(레아 세이두 분)가 나타난다. 단지 횡단보도에서 우연히 스치며 지나친 인연이지만 그날 이후 ‘아델’과 ‘엠마’는 서로를 기억하게 된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델’과 ‘엠마’는 서로에게 이끌린다. 미술을 전공한 ‘엠마’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캔버스 안으로 ‘아델’을 초대한다. ‘아델’은 자신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엠마’로 인해 이전에는 몰랐던 뜨거운 감정을 느끼게 되고, 평온하기만 했던 ‘아델’의 삶은 뒤흔들리기 시작한다. 

15살 소녀 아델의 인생은 파랑머리 엠마와 더불어 영구히 바뀐다. 엠마는 아델의 욕망을 열어주는 문이자 그녀가 당당한 여인이자 어른으로서 성장해갈 수 있도록 이끄는 안내자이다. 엠마와 더불어 아델은 성장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탐색하며, 한때 그 정체성을 잃어버렸다가 되찾는다.

튀니지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 압델라티프 케시시의 신작은 올해 전 세계 영화계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영화가 되어 버렸다. 프랑스 만화가 쥘리 마로의 『블루는 뜨거운 색』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무엇보다 두 여우 주연의 혼신의 연기로 빛난다. 

3시간에 달하는 상영시간이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게끔 하는 연출의 힘이 기본으로 깔려있으며, 그 힘은 결국 동성애라는 것이 사랑의 예외적인 형태가 아니라 그저 사랑일뿐이라는 사실을 설파한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스타 배우 레아 세두와 이 영화로 향후 스타의 반열에 들게 될 아델 엑자르코풀로스의 열연에 스필버그가 찬사를 보낸 올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다. 





[ About Movie ] 

아델은 정신적으로 순수하다.
그녀는 누군가가 소설을 해석해주는 것을 죽도록 싫어한다. 


아델은 순수함, 솔직함 그 자체다. 그냥 멍청하게 순수한 것이 아니다. 멍청하게 순수하면 우린 그것을 백치미라고 부른다. 그녀는 백치미 같은 얕은 수준의 매력을 뽐내는 그런 흔한 여자가 아니다. 순수하면서 복잡하고, 그 자체로 깊이가 있는 사람. 예술에 대해 배운 적은 없어도, 교과서적인 지식은 조금 부족해도, 마음으로 이미 그것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다. 다만 아델 자신이 자기의 이런 타고난 매(능)력과 타고난 깊이를 알지 못하며 스스로 평범한 삶에 자기를 한정 지으려고 한다. -그리고 그러면서 그녀는 정말 '행복'해한다. 뭐, 그 정도로 순수하단걸까.. - 극 초반의 아델은 자기 성 정체성조차 확실히 모르는, 아직 '첫 번째' 알도 깨고 나오지 못한 유년기의 상징이다. 

아델의 순수함과 솔직함에 대해서 조금 더 얘기해보고 싶다. 먼저 아델은 육체적으로 순수하다. 그녀는 일단 고등학생이다. 떡지고 헝클어진 머리에도 불구하고 눈부시게 아름답다. 침을 흘리고 자도, 멍하니 멍청한 표정으로 있어도 매력이 넘친다. 약간 말려 올라간 입술은 또 어떤가. 당장 연필과 캔버스를 꺼내 그리고, 노래하고 싶어지는 얼굴이다. 음식을 먹을 때는 항상 입 주변에 음식을 잔뜩 묻히며, 남자 앞에서도 샌드위치를 게걸스럽게 먹어댄다. 그 흔한 매니큐어 하나도 바르지 않은 손에, 화장기라곤 아예 찾아볼 수 없는 생피부, 콧물 따위는 쿨하게 삼켜버리는 모습까지, 모두 다 너무나 순수하다. (나중에 실연의 아픔을 겪고 딱 한번 화장을 하고, 마지막에 전시회에 엠마를 만나러 갈 때 딱 한번 '빨강색' 매니큐어를 바른다.) 

그녀의 이런 물리적인 측면의 순수함은 남루함이 아닌 아름다움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그냥 타고난 능력이다. 아델은 타고나기를 '블루'로 태어난 사람이다. 말했다시피 극 초반의 그녀만 그걸 모를 뿐이다. 파랑은 일반적으로 이성적이고 안정적인 색이다. 남성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 속의 파랑은 발산과 폭팔, 모순, 불안정성, 눈부신 순수함을 상징한다. 극 안의 파랑은 안정적이고 무거운 색이 아니라 모두 굉장히 선명하고 채도와 명도가 높은 파랑들이다. 가장 단순한 하나의 예를 들어 설명하면, 파랑이라는 남성성의 색이 여자들에게 투영되는 순간 파랑의 기존 의미와 영화 속 의미가 충돌하면서 무언가 격렬한 '반응'이 일어나게 된다. 그리고 그 반응들은 아델이라는 인물 자체, 청춘의 위태한 격랑, 삶의 발전과 변화를 모두 포함한다. 파랑의 상징성에 대해서는 꾸준히 더 얘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아델과 엠마. 만남과 헤어짐

이렇게 이성적이고 안정적인 감성의 아티스트인 엠마에게 아델은 엄청난 뮤즈가 된다. 더 이상 머리를 파랗게 물들이지 않아도 된다. 미친 듯 사랑하는 연인(=또 하나의 나)이 파랑 그 자체니까 말이다. 겉으로는 안정을 추구하지만(유치원) 사실은 정신과 육체 모두 불안정하고 감상적인 아델에게 엠마는 처음부터 빠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이 구조는 아델에게도 마찬가지다. 아델은 자기의 알을 깨줄 사람이 필요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자기 상황에서, 겉으로는 자유롭지만(파랑머리) 사실은 안정적이고 확고한, 그래서 자기에게 어떤 등대가 돼줄 수 있는 아티스트 레즈비언인 엠마 말이다. 

영화 초반에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아델이 엠마를 보며 떨려했을 때, 마찬가지로, 아니 어쩌면 엠마가 더 설렜을 것이다. 아델은 엠마를 계속 보면서 떨면서 지나가지만, 엠마는 아델이 지나가고 나서야 "뭐지 이 기운은?" 하면서 돌아보는 느낌이랄까. 자기에게 결핍되어 있는 부분을 이토록 훌륭하게 갖고 있는 상대를 만날 때 느끼는 감정. 설렘과 놀라움 그리고 존경심. 처음에는 아델과 엠마 모두 이런 감정을 갖고 있었다. 그렇다, 이 둘의 만남은 운명이었다. 거기엔 완벽한 심리상태와 완벽한 타이밍이 있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헤어짐 또한 운명이었다. 

엠마는 아델과 만난 뒤에 '외적으로' 승승장구한다. 일단 아델을 모델로 그린 그림이 굉장히 좋다. 당연하게도 파랑과 아델은 그림 속에서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린다. 근사한 파티도 열고, 전시회 제안도 받는다. 예전의 푸르딩딩(파랑이 아니다)하고 초췌했던 청자켓의 엠마에서 무거운 빨강색의 남방을 입는 완전 깔끔한 성공 직전의 아티스트로서의 엠마가 된다. 반면 아델은 외적으로는 아무런 성장이 없다. 오히려 후퇴가 적절할 것이다. 유치원 생활은 늘 그렇듯 놀랍도록 안정적으로 돌아가고 있다. 특별히 글을 쓰는 것 같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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